대저택의 고고한 귀족 영애가 아닌 평민들이나 입을 수수한 옷차림과 거적 같은 망토를 뒤집어 쓰고 맨발로 땅을 밟은 아가씨였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녀의 이와 같은 기행에 익숙해요.
그녀는 낮보다 밤을 뛰노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단 한 번 보지 못했던 것은 추잡하게 치맛자락에 튀어 있는 검고 붉은 얼룩입니다.
얼룩의 정체를 알아보기 전에 그녀는 당신을 보고 웃었습니다.
환희라는 말 그대로 웃었습니다.
레베카 르쉐르:쉿, 비밀이야.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롤 짧게 말하던 그녀.
사라:(그 날의 기억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습니다. 맨발에 검붉은 얼룩. 그래서 더더욱, 작금의 상황에 아가씨가 바깥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그때 당신은 그녀에게 어떻게 답했었죠?
사라:(상황 파악이 안 되어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일단은 고개를 숙입니다. 대답은 그 뒤에.) ...네, 아가씨.
레베카 르쉐르:넌 아무것도 묻질 않네.
내가 뭘 하고 왔는지 궁금하지 않니? (의미심장하게 웃을게요.)
사라:(그 물음에 잠시 망설입니다. 내가 묻는다면 선선히 대답해줄까? 한순간, 그 사적인 의문이 마음을 비집고 나옵니다만..) 알기를 원치 않으셔서 홀로 나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은것과는 별개로, 고개를 들면 눈에 어찌할 수 없이 걱정이 비쳐보입니다.)
레베카 르쉐르:...맞아. 정론이네. (키득키득 웃습니다. 이런 식의 웃음은 당신 앞에서밖에는 나오지 않아요.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동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사라.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사람을 죽여도 좋은 마땅한 이유란 게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 그게 될 수 있을까?
사라:(사람을 죽여 마땅할 이유. 치마에 묻어있던 검붉은 얼룩이 새삼스레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그건, 제가 감히 단언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둡고, 가라앉은 캄캄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아가씨가...논할 일이 있었나요? 괜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레베카 르쉐르:눈앞에 들이밀어지지 않으면 감히 판단내릴 수 없다는 거야? (불쑥, 가벼운 몸짓으로 움직여 당신의 눈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바라보다 이내 몸을 물러요. 춤을 추는 듯한 동작입니다.) 신중하다 해야 할지, 우유부단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쩌면 중요치 않겠지. 네가 말한 대로 네게 들이밀어 진 후라면, ... 이미 어찌 할 수 없었을 테니.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이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그래, 이야기를 바꾸어 볼까. 사라, ...
나 어쩌면.
결혼할지도 몰라. (가늘게 웃는 얼굴입니다. 그 자체가 하늘의 초승달을 닮았어요.)
사라:......(평소때처럼 대답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너무 많은 상황과 정보가 머릿속에서 뒤섞여서...그러니까, ... ) ...결혼, 이요.
(응당 놀라고 축하해야 할 상황이지만..아, 부끄럽게도 오늘따라 내가 너무 이상하군요. 의미심장한 방금 전의 대화 때문인걸까요? 이미 멍하니 놀란 모습은 다 들켰겠습니다.) 그건..큼, (괜히 진정하기 위해 헛기침을 합니다.) 축하드려요. 마님과 주인어른께서도 기뻐하시겠네요. 관심 가는 영식이 생기셨나요?
레베카 르쉐르:(가늠하듯 들여다봅니다. 어쩌면 당신이 아쉬워하길 바랐어요. 답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며, 지금껏 그런 사람 없지 않았느냐고... 아, 왜 제 쪽이 기분이 나빠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떠본 것은 나인데.) ...축하해?
왜? (아니, 나는 알고 있어요. 난 끌림을 끌림이라 정의하지 못할 정도로 신중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노골적으로 기분이 상함 표정을 지을게요. 이건 투정 같은 겁니다.)
내가 결혼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사라:(기분 상했음이 명백한 얼굴에 다시 당황합니다.) 그럴 리가요, 많이 놀랐습니다. 아가씨가 그런 마음을 가질만한 영식은..솔직히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답을 하는 내내 왜인지 시선을 피하고 싶어져 애꿎은 제 옷자락만 손으로 쥡니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표출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 또한 항상 머리에 새기고 있습니다.)
레베카 르쉐르:...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칩거하는 낮 중에도 널 불러 포크로 케이크를 푸게 시키고, 몰래 빠져나온 밤 중에도 널 불러 담장을 나란히 걷게 했으니.
내 일상엔 늘 네가 있고, 네 일상엔 늘 내가 있는 거야. (기분은 풀리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참고 있는 건지도 잘 가늠이 가지 않아요. 난 당신과 같은 성정의 인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빛냅니다. 춤추듯 멀어져 간 그 동작 그대로 다시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머리칼을 드리우고, 턱에 손가락을 얹어 당신이 한껏 고개를 들어 자신을 마주하도록 할게요. 역시 난 상냥한 성격이 되지 못합니다. 당신에게조차요. 입술을 꾹 눌러 겹칠게요. 그 의도를 나조차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내뱉는 거에요. 나, ) 그 사람을 저택에 초대해달라고 했어. 한 달 즈음 걸리지 않을까? 그 때엔...
레베카는 말을 잇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먼저 자리를 유유히 떠나는 레베카의 뒷모습을 바라본 일 있었습니다.
상념은 소리에 끊깁니다.
주인 마님:일찍도 도착하시는군.
계단을 도로 내려가면 영 못마땅한 얼굴로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는 주인어른과 작게 대화하는 주인마님이 보입니다.
사라:...(문득,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나는 이미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꾸 이런...이런 일들을 마주할 리가 없잖아요.)
아뇨, 브로치는..찾지 못했어요.
레베카 르쉐르:그럼... 다른 건 찾았니?
무언가 수상하고, 의심스럽고,
네게는 받아들이기 버거운 무언가를 말이야.
사라:(그건..찾았죠. 너무나도 많이.)
대체 뭘 하시다가 온 거예요, 아가씨. (사람을 죽일 이유가 뭐가 있을까 물어봤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그건 나도 궁금합니다. 내가 아는 한 아가씨는 사람을 죽여 마땅할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체 왜..
레베카 르쉐르:왜, 와 무엇을,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해? (가늘게 뜬 눈이 침잠해 있습니다. 그 안에 당신이 있다는 점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으나 마음이 먼 곳에 가 있는 듯해요.)
사라:(이전에는 보지 못한 눈입니다. 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그러는 걸까요, 무엇을 겪었길래.) ...왜?
레베카 르쉐르:...인간은 너무 감정적이야. 아니,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에, 세상은 너무 낙후되어 있어.
보편적인 가치관, 사법 제도, 혹은... 레베카 르쉐르 그 자체가.
사라.
네게 난 이미 가늠할 수 없을 만치 감정적인 말괄량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날 아껴주겠어?
늘 그랬잖아.
사라:......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물고 맙니다. 이쯤되면 다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 자신에게 내리는 못박음 같습니다. 나는 그녀를 밀어낼 수 없다는...) ..제가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아가씨도 잘 아시잖아요.
레베카 르쉐르:... (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에게로 걸음을 옮겨 가만 어깨응 맞대요. 고개를 푹 숙입니다. 드리워진 머리칼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가끔은, 네가 날 뿌리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해.
어쩌면 내가 꺾여 버렸을 테고, 또 어쩌면 내가 너를 꺾어 버렸겠지. 그건 결국은 알 수 없게 되겠지만, 사라...
숨이 막혀. 나, 네가 너무 갖고 싶어서. 그런데...
너와 나를 제외한 무엇도,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서.
사라:(아가씨가 때때로 비춰보이는 어린아이같은 면은 내가 귀여워 마지 않는 점이지만 또한 내심 무서워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이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나를 끌어내곤 하거든요. 모두가 세상에 순응하려 하는 순간에도 홀로 어김없이..)
(나는 무엇도 함부로 약속해줄 수 있는 몸이 되지 못합니다. 나 자신도 어찌할 줄 몰라, 길게 드리워진 검은 머리칼을 쓸어넘겨 줍니다.) ...하지만 아가씨가 원하는 한 저는 아가씨의 사람일 거예요.
레베카 르쉐르:차라리 네가 날 거부해서, 그래서 내가 널 가질 수 없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거야.
(비난조가 아닙니다. 이것은 탄식에 가까워요. 어쩔 수 없죠, 난 결국 당신의 포용에 기대고 마는데요.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늘 같은 질문을 하고야 마는데요. 몸을 옹송그립니다. 평균보다 훨씬 큰 신장을 푹 꺾어 당신에게 기대어요. 어깨에 고개를 파묻습니다.) 안아줘, 사라.
모두 괜찮다고 말해줘.
죽음보다 사랑이 강하다고.
사라:(다른 여인들보다 훨씬 큰 몸이 품에 닿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말들은 항상 많았습니다. 비밀스럽고, 무섭고, 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며..혹은 그마저 꾀병이었다거나.
그저 조금 서늘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전부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여기고 싶어하는 건...)
...괜찮아요, 아가씨. 죽음보다...(잠시 머뭇거립니다. 여느때처럼 내가 감히 이런 것을 확신해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치켜듭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죽음도 사랑을 막을 수 없어요. (무엇을 겪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등을 쓸어주며 상대가 안심하길 바랍니다.)
레베카 르쉐르:...그래. (어깨를 감싸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당신의 어깨에 더해지는 몸의 무게도 마찬가지에요.)
깨닫지 못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럴 거라는 점. 내가... 그렇게 요구하기만 한다면 네가 거기 있을 거라는 점. 그것이야말로... 죽음보다 사랑이 강하다는 증명이겠지. ...
(불쑥 당신의 어깨를 밀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레베카에요. 팔을 쭉 뻗어 당신의 품을 밀어내고, 그늘진 얼굴을 한 채 웃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뚝, 당신의 손등으로 무언가 떨어집니다.
빗방울입니다.
끝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레베카는 그어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웃습니다.
머리카락이 금세 젖어 뺨에 달라붙고 값비싼 옷이 젖어들어도 그저 환하게,
레베카 르쉐르:브로치는 됐어.
이제 그만 들어가, 사라.
저택에 들어가면 어린 견습 하인이 당신에게 전합니다.
의사가 다녀간 이후에 킬리언 로렌 영식이 당신을 찾았다고요.
레베카는 일언반구 없이 방으로 도로 올라가버립니다.
사라:(떠난 자리를 잠시 보다가 영식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당신은 킬리언의 방에 들릅니다.
노크하면 들어와도 좋다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의사가 오기 전까지 그는 흙투성이 옷에 지친 기색,
손에도 긁힌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외관이 수려하긴 합니다.
다른 사용인들 말로는,
그토록 앓던, 혹은 앓는 시늉을 내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던 레베카가
초상화를 보고서 돌연 호감을 표할 만큼이요.
얕은 상처가 난 손을 소독하고 이곳에서 주는 옷으로 우선 갈아입은 그는 아까보다 모양새가 퍽 말끔합니다.
킬리언 로렌:불러 놓고는 가만 세워둬 미안하군. 이곳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레베카 르쉐르 영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더군.
자네는... 영애에 대해 잘 아는가?
사라:아가씨의 곁에서 모신지 꽤 되었습니다.
킬리언 로렌:서로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은 친분이 있는 모양이군.
그런 자네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어 유감을 표하지.
나 역시 먼저 호감을 표한 영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네. 사교계 일각에서 영애가 나를 흠모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싫지 않았다. 가문 간의 결속을 위해 결혼 이야기도 오가고 있었고, 나는 별반 이의가 없었다네. 어쨌든 귀족가에 그녀는 별볼일 없는 여성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사건만 아니라면.
그래서, 그녀...
혹 말을 탈 줄 아는가?
사라:(질문의 끝에 적당히 짧은 여백이 들어갔을 때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아가씨께서 말을 타는 모습은 본 적 없습니다. 최근엔..방에만 계셨었으니 시간이 있을리도 없고요.
킬리언 로렌:...그렇다면 혹 자네는?
사라:(나까지? 순간 맞질문이 튀어나갈 뻔한 것을 참습니다.) 저는 더더욱, 그럴 명분도 시간도 없습니다.
킬리언 로렌:미안하군,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말게나. 예민해져 그저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뿐이니. ...마차를 습격한 것은 관리가 잘 된 듯한 검은 말과 그 위에 탄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네. 숲속이었음에도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했지...
...관리를 잘 받은 말이야 어디에든 있고 구태여 이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이는 근처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것만으로 의미 있는 결론을 얻을 숭 없겠지.
게다가 귀족 가라 해도 한낱 여성이 어떻게 에스코트 없이 말을 타겠나.
그래도, ... 그래.
자네는 영애가, 내가 처한 상황에 진실로 안타까워한다고 생각하는가?
사라:...원체 감정을 표현하는데 무디시지만, 아가씨께서는 영식의 초상화를 본 후부터 영식이 방문하시기를 기다려 왔으니, 분명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계실겁니다. (사건의 경황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괜히 다시 복잡해집니다.)
킬리언 로렌:...더 오래 보아 온 사람이 그리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혹은... (말없이 시선을 던집니다. 당신도 온전히 신뢰받고 있지는 않은 눈빛이에요. 당연하지만요.)
후... 그래, 의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자네가 보는 레베카 르쉐르란 어떤 인물이지?
사라:(아이같다. 아니, 이건 말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냥, 귀족 영애십니다. 조용해 보이지만 다소 아이같은 면이 있으신. (그 단어를 빼고는, 레베카라는 사람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사라:(복수와 살해의 정당함을 묻는 말에 답은 여전히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 한 순간의, 습한 기억에 잠식당한 후인 지금에서조차..
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어제의 그때에, 그녀에게 사랑이 죽음이 강하노라 말해줄 수 있는 존재가 맞을지...)
(피로 범벅이 되었으나, 여전히 고아한 나무에게 다가갑니다.) ...사람을 죽여 마땅할 이유는 없어요. (지극히도 상식적인 이론입니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이론. 하지만 조금 알겠어요. 그때엔 쉬이 이것을 말할 수 없던 이유...그러니까, 나의 이 답은 최근 연쇄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답이 아닙니다. 언젠가의 안개 낀 기억 속에서, 눈 앞에서 스러져간...피 묻은 눈물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냅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어요..
레베카 르쉐르:그럼... 그럼, 넌 날 나무랄 거야? (어쩌면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죽어 마땅한 이유 따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 대답이 향하는 것 역시, 나의 살인에 관한 것이 아닌 걸 알아요. 내 물음이 나의 살인에 관한 것이 아니었듯.)
그들이 옳지 않았다는 걸 증명키 위해... 나 역시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알면서도 쏘아붙입니다. 나에 관해서는 기실 작금의 살인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걸요.) 혹은 이번에도... 내게 져 줄 테니.
하지만, 사라. 사라... 나.
나 널 갖고 싶어. 널 끌어안고, 단 꿈을 속삭이며 세상은 제법 쓸모없지 않노라 조소하며 나이들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수해야만 해. 끝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어.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자신의 죽음을 갚으라 종용하는 여자가. 난 네게... 사랑을 말하기에 너무나도 죽음에 가까운데.
사라:(아, 얼마나 평범한 고백인가요?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이 말하면 한없이 보통의 미래고, 축복받아 마땅한 영원의 맹세입니다.
하지만 원래의 나는 이것을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 이상과 망상을 논하는 동화에서조차 우리와 같은 형태는 없으므로.
빛바랜 과거 속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요? 그들은 그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함께인데, 여전히 세상 또한 마녀를 찾고 있는 건가? 그 기억속 내가 무슨 생각으로 너의 곁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도...다만 충동적으로,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던 말을 꺼냅니다.)
그럼, 내가 계속 사랑을 말해줄까..
네가 계속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내가 사랑을 말해줄까, 그것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입니다. 세상 그 무엇도 이것을 축복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때와, 그 바랜 세상과 지금이 별반 다를 것 없다면...)
사라:난 너의 사라잖아..(그 셀 수 없는 악몽에 시달린 후에 나를 찾아왔던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약속은 이게 다입니다. 피가 묻어 흘러내린 입술에 홀린 것처럼 제 입을 짧게 겹칩니다.)
레베카 르쉐르:...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난 기어코, 마녀가 되었잖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악마가 되어 여기 섰는데. (지척에 있는 밝은 머리칼을 힘없이 내려다봅니다. 나를 위해 몰락을 입에 담는 당신이 이해되지 않아요.)
사라, 너.
날 사랑하니?
왜? 죽음보다... 사랑이 강하니까?
사라:(순간 말문을 잃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줄 몰랐는데, 넌 저지른 행동에 비해 때때로 바보같은 말을 하는구나 싶어.
나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 그때의 너도, 나까지도...그때의 기억은 나 자체에게 줄 영향이 없는 거야.
사랑하냐니,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먼저 입 맞춘거니..(일순 조금, 어이가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냥 너를 아낀다고 생각했었어...그렇게 믿고 싶었어. (잠시 바닥을 보던 시선을 들어 상대를 올려다 봅니다.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는 것 같습니다.) 죽음보다 사랑이 강하다느니 알게 뭐야. 지금 당장 이런 꼴을 해도 널 떠날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요? 아가씨.
레베카 르쉐르:너는... 때로 눈에 빤히 보이는 불행조차 보지 못하는구나 싶고. (눈물젖은 얼굴로 웃습니다. 그렇기에 하릴없이 내게 뛰어드는 거겠죠. 기억하지 않는 생에까지. 이 빌어먹을 삶이 싫어요. 개인으로선 바꿀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풍조의 세상이 싫습니다. 어차피 한 번 악착을 다하고도 실패한 삶, 두 번이라고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네가 또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내 생각은 변함없단다. 네 지금의 선택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야. 네가 곁에 있는다 한들, 영원히 사랑을 속삭여 준다 한들 내가... 제정신일 거라고는 장담 못해.
하지만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멍청한 이를 사랑할 수 없겠지. 사랑같이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고서야... 빌어먹을 세상에서 우리를 구할 수 없을 거야.
네 원하는 대로 해. (눈을 감고, 당신의 손에 제 손을 쥐여줍니다. 체념한 듯한, 혹은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럼에도 붙잡아 도망치겠다면 네 것이 될 테고.
놓아주겠다면 진짜배기의 마녀를 잡아들이겠지.
레베카 르쉐르:네 것이니까, 사라. 두 번째로 사랑을 말함으로써, 레베카라는 자가.
사라:(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다면 붙잡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죠. 그렇지만...상대의 앞에서는 영향받지 않았다 했지만, 아직도 아른거립니다. 제 앞에서 스러진 여자가.
기존의 애정과 먼 과거가 겹쳐져서...나는 당신이 또다시 그렇게 스러지길 원치 않았던 것 같아요. 적어도, 마녀라고 불리면서, 내 앞에서...상대가 죄를 지었다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목을 매다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 건 그래서인걸까요? 혹은 지금 이 순간, 나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제 손에 쥐여진, 조금 더 크고 창백한 손은 허공에 떨어트리지 않기로 합니다.)
레베카 르쉐르:(떨어트려지지 않는 손에 실소합니다.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웃어요. 얹어만 두었던 손에 힘을 줄게요. 당신, 당신은 진실로 불가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