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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율이

샘을 보고 하늘을 본다 로그 백업

 

 

KPC. 남 율 

 

 

 

 

PC. 정선호

 

 

 

 

 

 

2022년 01월 07일
 
샘을 보고 하늘을 본다.
 
차르르, 잔잔한 바람이 불자 거대한 심연에 물의 파동이 퍼집니다.
 
작은 물결이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안 쪽으로 움직이네요.
 
주변의 풍경을 담은 심연이 일렁이는 것이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가고 나면, 심연은 잠잠해집니다.
 
파랗고 붉은 몽환적인 하늘을 담은 것이 꼭 거울처럼 보입니다.
 
물론, 당신을 비춰내지 못해 거울이라는 역할은 못하지만요.
 
심연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연못 특유의 향이; 당신의 폐부를 간지럽힙니다.
 
습기가 가득해 눅눅하지만, 깨끗한 안개의 향. 그 사이로는 약간의 짠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연못이 아니라 꼭 바다 같이
 
하긴, 저 크기면 연못이 아니라 바다라고 해도 믿을 것 같네요.
 
저 큰 연못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빛이 들기는 할까요?
 
당신이 이끈 영혼은 모두 심연 속으로 가는데,
 
거대한 어둠에 삼켜져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당신 외에도 모두가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속이 답답합니다.
 
신을 벗고 발을 담가내면, 종아리까지 물이 닿는 것이 느껴집니다.
 
분명 이렇게 얕은 연못이 아닐 텐데,
 
더 들어가지지 않습니다.
 
푸른 어둠이 발 밑에 존재하지만 누군가가 당신이 어둠에 스며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존재였죠.
 
당신은 '저승의 인도자' 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망자를 데리러 인간계에 가고, 영혼을 안전하게 심연으로 데려오고.
 
벌써 1224개의 영혼을 쉴 새 없이 이곳으로 인도했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안타깝게 죽은 영혼을 인도하기도 했고,
 
동시에 같이 죽은 연인들을 인도하기도 했고,
 
외롭게 몇 십년을 살다가 죽은 영혼을 인도하며 이런 저런 말도 했죠.
 
당신을 만난 수 많은 영혼들은 자신의 죗값에 따라 심연에 가라 앉았습니다.
 
오자마자 가라앉는 영혼도 있었고,
 
며칠이 지나서야 가라앉는 영혼도 있었죠.
 
당신에게 주어진 죗값이 얼마나 무겁길래,
 
다른 영혼들과 달리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 수가 없는걸까요
 
답답함에 한숨을 길게 쉬며 심연에서 빠져나옵니다.
 
정선호:(혹시 저는 살인마라도 됐던 걸까요. 더 들여보내주지 않는 물을 뚱히 바라봅니다..)
 
다리는 언제 젖었냐는듯 눈 깜짝할 새 말라 있습니다.
 
마침 명부를 가지고 오던 동료가 당신을 발견하고 다가오네요.
 
열세 번째:둘쨰야, 여기 네 명부.
축하해, 이제 곧 기회를 얻게 되겠네.
 
축하한다니, 무슨 의미일까요?
 
한 번 물어보는것이 좋겠습니다.
 
정선호:..기회라뇨? (명부를 받고 평소때처럼 뒤적거리려다가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봅니다.)
 
열세 번째:(당신이 받은 명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잔잔하게 웃는 얼굴로) 명부가 빨간색이잖아. 빨간색 명부의 의미는 '마지막 망자' 라는 의미라고들 하니까
이제 이 마지막 망자만 인도하면 저기 심연으로 건너갈수 있게 된다는 소리겠지?
 
정선호:...마지막. (참 신기한 단어입니다. 항상 받았던 명부인데 그 단어 하나로 새롭게 느껴지니까요. 이곳에 적힌 망자를 데려오면 자신도 가라앉게 해주는 것일까요? 저 아득한 물 아래로.)
 
열세 번째:모처럼 얻은 기회니까 마지막 망자를 인도해주고 나면 너도 저 물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을거야. 그동안 정들었는데 벌써 헤어진다고 하니까 조금 아쉽다
 
그가 잔잔하게 웃다가 퍼뜩 생각이 난듯이 입을 엽니다
 
열세 번째:아차 내 정신좀 봐 나 이제 인도하러 가야하지. 먼저 가볼게. 수고했어. 지금까지
 
정선호:(차마...진짜 정이 많이 든 이처럼 살갑게 대했던 적도 없어 그저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이고 맙니다.)
 
작게 웃던 동료는 자신의 손목에 그려진 주문진을 지긋이 누르며 이동했습니다.
 
동료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부러움과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저 심연이 뭐라고...
 
정작 당신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는걸요.
 
뭐가 있는지 궁금은 하지만..
 
마냥 달갑지는 않습니다.
 
동료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립니다.
 
당신의 손에 들린 빨강색 명부를 바라보게 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망자입니다.
 
이 망자만 인도하면 당신은 심연속으로 빠져드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겁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름, 생년워일, 특이 인적사항.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죽음은 너무 아득하게 길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손으로 이름을 훑으면 금가루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짝한 것이 눈에 띕니다.
 
똑같은 명부일텐데..
 
이제 마지막 명부라 홀가분 해야 하는데,
 
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요.
 
명부의 아래쪽을 바라보면..
 
그의 사망시간이 적혀있습니다.
 
사망시간, 19시 16분
 
지금은 10시 4분입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미리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늦어서 영혼을 놓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망자를 향해 가볼까요?
 
늘 그랬듯이 당신의 손목에 낙인처럼 찍힌 두 개의 원으로 손가락 두 개를 올립니다.
 
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으면..
 
바람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신체가 바스러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나,
 
둘,
 
셋-
 
먼지가 공기의 사이를 유영합니다.
 
그리고 빠르게 찰나의 시간들을 붙잡아 시공을 푸르게 넘어섭니다.
 
두 발이 바닥에 닿스비다.
 
닿습니다.
 
손과 팔이 이어지고..
 
폐부에 따뜻한 공기가 들어차는 것이 느껴집니다.
 
느리게 숨을 뱉으며 눈을 뜨면 익숙한 곳..
 
인간계입니다.
 
그런데..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좋은 시력..)
 
당신의 손목에 그려진 두 개의 원이 푸르게 빛났다가 사라집니다.
 
이건..
 
당신이 인도할 영혼이 생겼을 때 나는 표시인데.
 
분명 당신의 망자는 약 9시간 이후에 죽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정선호:....? (푸르게 빛나는 원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봅니다. 혹시 무언가 틀어진것인가요?)
 
주변을 둘러보면 전체적으로 어두운 파란색으로 꾸며진 거실이 보입니다.
 
연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벽.
 
짙은 파란색의 소파.
 
검은색의 테이블.
 
tv옆에 있는 탁자에는 액자가 세워져 있네요.
 
당신의 마지막 망자의 모습이 담긴 액자를 향해 다가가면...
 
남 율:오늘도 와준거에요?
 
어디선가 헛웃음과 함께 지친 음석이 들립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당신의 쪽으로 다가옵니다.
 
천천히 손이 내려가고,
 
웃는.. 아니 우는 듯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찹니다.
 
이 사람입니다.
 
명부에 적힌 당신의 마지막 망자,
 
남 율
 
마지막 명부임에도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 이름의 주인공
 
그가 당신의 앞에 있습니다.
 
남 율:□□씨 진짜 못됐어요.. 맨날 꿈에 찾아오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당신을 보며 부르는 한 단어,
 
지금 당신의 얼굴 주인 이름인가 봅니다.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남 율:오늘도 대답해주지 않을거에요?
 
정선호:....(괜히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것이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만은 않습니다. 이름이 잘 안 들리는 것 마저도요.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입을 엽니다.) 대답을 해주면 뭔가 나아집니까?
 
다곰 도. (GM):* 주크박스가 지금 재생이 되어서 노래 들리는지 확인 부탁드려요
 
김신선 :들립니당
 
남 율:.... (두눈을 연신 깜빡입니다. 평소와는 다른 당신의 분위기 탓일까요.) 오늘은.. 그래도 대답해주네. (그가 짧게 웃었습니다.) 맣이 나아지죠. 그동안 당신은 아무 대답없이 슬프게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기만 했으니까. 그래도 마음껏 끌어안을 수 있어서 기뻤는데.
 
아무래도 그는 당신이 인도자라는 사실을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선호:(죽음을 깨달아서 좋을 건 없지...)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법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영혼이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채 이승을 떠돌아다니면
 
영혼에 큰 해가 갈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결국 당신은 그에게 말해야만 하겠죠?
 
정선호:(여태껏 해왔던 일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는데 만나게 된 것은 의외지만...)
 
남 율:왜 또 아무말이 없어요?
 
그가 재촉을 하는듯 보였습니다.
 
마치 당신이 어떠한 말이라도 해주듯이 바라는것처럼.
 
정선호:....(이건 또...다른 의미로 난감합니다. 저 재촉하는 얼굴에 대고 당신이 죽었노라 대뜸 말해도 되는 것일까요. 마지막이라 그런지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남 율:..왜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진짜처럼 만져지는 당신에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떼고 두어걸음 물러섰지만)
 
정선호:(재촉을 한 것은 당신임에도, 뺨을 만지고선 놀라 물러서는 것이 약간 억울하다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을 괜히 뚱하게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입을 열어요.) 남 율씨, 데리러 왔습니다.
 
남 율:(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데리러 간다니 어디를?) 저를... 데리러 와요? 당신이.. 꿈속에서 이런 말 하는건 처음이네요. 어디로 가는건데요?
 
정선호:..정정드리자면 이건 꿈이 아닙니다. 당신의 영혼을 인도하러 왔죠. (매일 꿈에서 이 얼굴을 보았다니, 꽤나 무거운 사랑을 했나 봅니다.) 당신은 현재 사망한 상태예요.
 
남 율:내가... 죽어요...?
 
그의 두 눈이 흔들렸다가 아니라는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습니다.
 
남 율:거짓말 하는거죠? 제가 죽었을리가 없잖아요.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남 율은 당신과 눈을 마주치더니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죽을 때 기억을 잃는 경우도 있다 하던데..
 
남 율이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보면 당신이 질 나쁜 장난이라도 한 줄 알겠네요.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며 너무 무서운 꿈이라도 작게 읊조리던 남 율은 퍼뜩 멀뚱히 서 있는 당신을 밀치고 화장실로 향합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아)
 
남 율:.... 나... 진짜 이상한 꿈을.. 꾸나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꿈을 꾸나요? 왜... 내가...
 
남 율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앞에 우뚝 서서 안쪽을 바라봅니다.
 
보면 안되는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한참을 바라봅니다.
 
화장실 안쪽에 있는 하얀색의 작은 욕조에 한 인영이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잠을 자기라도 하는 걸까요.
 
편안하게 감긴 눈에 그렇게도 보이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욕조를 가득 채운 물이 핏빛으로 탁해져 있습니다.
 
시리도록 붉은 색이 마치 빨간색 장미를 잔뜩 짓이겨 놓은 것 같습니다.
 
장미의 향기를 대신,
 
피비린내만이 화장실을 가득 메울 뿐입니다.
 
서슬퍼런색을 띈 칼이 안쪽에서 푸른 빛을 냅니다.
 
남율의 시선은 천천히 욕조에서 손목으로 옮겨집니다.
 
사람에게도 나이테가 있던가요.
 
손목에 그려진 선들 위로 깊은 상처가 생깁니다.
 
빛까이 엷어진 생명의 붉음이 욕조에서 넘쳐흐릅니다.
 
? 빛깔이
 
물이 흐르는 소리가,
 
생이 멈춘 소리가.. 고요합니다.
 
남 율:제가... 진짜... 죽었나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당신을 보던 이의 눈이 커집니다.
 
죽음을 인지한 영혼의 빛깔이 옅어집니다.
 
영혼의 끝자락이 흔들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상처 입을 것 같습니다.
 
남 율:........... 악몽이죠?
그냥 꿈꾸고 일어나면
당신도 없고 여기 나 혼자 덩그라니 누워서 자고 있는거죠?
그냥...그런거죠?
 
정선호:(자살이었던걸까요. 기억을 잃으면서 그 순간의 부정적이었을 감정도 함께 사라진 것인지, 제 눈앞에 서 있는 상대에게선 삶의 의지가 꽤 강해보입니다. 하지만 전 할 일을 해야죠..) 아뇨. 제가 당신을 데리러 온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전 당신의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왔어요.
 
남 율:.... ..... .. 거짓말이기를... 바랐는데.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충격으로 멍하니 욕조에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자신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지체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억지로라도 영혼을 인도해야 합니다.
 
영혼에 상처입으면 정확히 무슨 이이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망자 남 율을 보면 내키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왜인지...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릴 순 없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명이니까요.
 
남 율:... 제가.. 정말 죽었어요?
 
바닥에 주저 앉아 욕조로 시선을 고정시킨 남율이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에게 다시 묻습니다.
 
이걸 물음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아까보다는 안정된 모습입니다.
 
정선호:(아까보단 나아진 것 같으니 괜찮은 건가? 주저앉아있는 그의 곁에 걸어가 무릎을 굽혀 앉습니다. 그가 죽은 것을 입에 담을 때마다 왜인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네. 당신의 생명은 숨이 다 했습니다.
 
남 율은 당신의 대답에 고개를 푹 숙입니다.
 
그리고는 작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남 율:그래요. 이 정도면 오래 버틴거겠지.
 
생각보다 죽음을 빨리 받아들이는 망자네요.
 
옅은 웃음을 띄운 낯은 어쩐지 후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길게 들이마셨다가 뱉는 숨에는 삶의 후회가 담겨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고 서글퍼 보여서 있지도 않은 심장이 아려오는 듯합니다.
 
앉아 있는 남 율에게 손을 뻗어 일으킵니다.
 
문을 열어야 하니까요.
 
맞잡은 손이 어딘가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럴 리 없는데...
 
푸르게 빛나는 손목을 바라보며 작게 주문을 외웁니다.
 
먼지처럼 일어난 빛이 곡선을 그리며 현관문으로 날아가 그 속으로 스며들면..
 
은은한 색깔의 빛이 당신과 남 율을 향해 쏟아집니다.
 
자, 이제 영혼의 인도를 시작할까요.
 
모든 공간의 분리인 '문'을 열어냅니다.
 
문 밖에서 서늘한 바람이 당신의머리카락을 흩뜨리며 지나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죽음으로 스며들어 가면..
 
환한 빛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알록달록한 색체가 불분명하게 놓여 있는 모습입니다.
 
당신을 따라 들어온 남 율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면,
 
그 쪽으로 색채가 모입니다.
 
남 율의 무의식이 구체화 되는 중인가 보네요.
 
남 율:여기는 어디에요?
 
남 율은 다 둘러보았는지 당신을 바라봅니다.
 
둘러볼 것도 없는 무의 세계지만..
 
살아있던 자에게는 신기한 곳이겠죠.
 
나 ㅁ율의 눈을 마주하면
 
꼭 심연에 가라앉은 느낌이 듭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그리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이런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아무말도 못하고 못하고 있으면 남 율은 다시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남 율:그런데.. 그쪽은 누구에요?
□□씨가 아닌거죠?
죽은 저를 데리러 왔으니까... 저승사자 같은거려나
저승사자는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다던데.. 진짜였나봐요.
 
정선호:(이 얼굴이 어떻게 생긴건지 자신은 잘 못 보았지만, 상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을테죠.) 맞아요. 당신이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남 율: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살짝 웃음기 어린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당신과 눈을 마주합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늘 언제나 나랑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웃어주고는 했거든요.
 
정선호:..(웃어주었다라. 순간 이름 모를 그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웃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지만...왜 이런 생각이 드는걸까요? 마지막이라 그런 것인지...자신에게 있어서도 참 생소한 날입니다.) 얼굴은 자연히 변하지만 그 사람의 성격은 잘 몰라서요.
 
남 율:그사람... ? 글쎄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가 가만히 자신의 무의식에 따라 천천히 구성되어지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나한테만은 매우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마 지금의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 날 제외한 다른사람한테는 잘 웃지 않았거든요.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들어 약지에 껴져 있는 반지를 손으로 매만집니다. 마치 그가 말하는 그사람을 그리기라도 하는것처럼) 제가 가는 길을 안해하는 역할이라면.. 역시 저승사자 맞죠? 근데.. 갓은 안썼네요?
 
정선호:....(그래요. 종종 있었죠. 저승사자이니 갓을 쓰지 않나? 하는 영혼들이요. 그 말들이 쌓이고 쌓였을 땐 정말 갓이라도 구해 쓰고 다닐까 하는 충동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많이들 그렇게 묻더군요. 옛날에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써도 괜히 불편하기만 하니까요.
 
남 율:하긴, 그 긴 머리에 갓까지 찾아쓰려면 힘들겠어요. (그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그가 생각하는 옛날로 혼자 돌아간것만 같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당신은 눈물이 나도록 그를 닮아 있었습니다.)
 
남 율과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흐렸던 색채들에 굵고 진한 윤곽이 생겼습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의 형태인 것 같아요.
 
크고 작은 형체들은 당신과 남 율을 스쳐 지나갑니다.
 
하늘에서는 작은 알갱이가 눈처럼 느리게 떨어집니다.
 
어쩐지 따뜻한 향이 코 끝을 맴도는 것 같아요.
 
흐릿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눈만 깜빡이고 있으면,
 
남 율이 옅은 웃음을 띄웁니다.
 
행복한 것 같기도, 슬퍼보이기도 한..
 
연분홍과 연파랑
 
그 중간의 미소입니다.
 
남 율:저승으로 가는 길은.. 되게... 잔인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네요.
 
남 율은 하얀 알갱이를 향해 손을 내밀어 잡아보려고 하지만,
 
그의 손만 빗겨 떨어집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낯을 떠나지 않네요.
 
남 율은 일렁이는 색채들 사이로 한 걸음 다가가, 스며듭니다.
 
당신의 눈 안에서 남 율이 흩어지며 사라집니다.
 
안으로 들어간 남 율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금방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 남 율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물감이 도화지에 퍼지듯, 그 안으로 몸을 맡겨 들어갑니다.
 
남 율은 하얀 알갱이가 붙어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슬픔을 누르며 숨을 천천히 고르던 남 율은 당신을 돌아봅니다.
 
순간, 세게 부는 바람에 우수수 눈보라가 칩니다.
 
남 율:여긴 말이죠.
나랑 □□씨가 봄에 많이 왔던 곳이에요.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들어진다는 이야기 알아요?
□□씨랑 둘이 여기를 지나가면서 맨날 손을 휘적 휘적 저었거든요.
한번도 못잡았는데, □□씨는 딱 한번 잡은적이 있었어요.
□□ 근데.. 자기 소원은 안빌고 저한테 벚꽃을 넘겨줘버리지 뭐에요.
 
남 율:이래도 되는건지... 남의 소원 뺏어 빌면 안이루어질 것 같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소원을 빌었는데요...
결국... 안 이뤄졌네요.
 
정선호:....(우연이 아니었는지 꾸준히 들리지 않는 이름이 괜히 거슬리게 느껴집니다. 상대에게는 익숙할 나무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입을 엽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데요?
 
남 율:그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신은 날 미워했나봐요. (손을 뻗어 나무를 손으로 쓸어내립니다. 추억을 회상하듯이) 그 사람과 나는 행복해지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아-,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많은데 들어볼래요?
 
정선호:(왠지 이야기가 길어지게 됐지만..상관없지 않을까요. 마지막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는 당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 율:가만있자 여기 자주왔다고 그랬잖아요. 어느날은 그사람이 여기 나무밑으로 저를 데리고 와서 벚꽃을 한가지를 꺾더니 제 귀에 걸어주고 예쁘다면서 온갖 청승을 부렸던 적이 있었더랬죠. (엷게 웃으면서) 그때 저도 벚꽃 하나를 꺾어서 그사람의 귀에다가 걸어주려고 했는데 키가 너무 커서 잘 안꽂아지더라구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무릎을 굽히면서 벚꽃을 귀에 꽂게 해주고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 예뻐요? 하고 물었었던 적이 있었어요. 내가 그거에 대해 뭐라고 했었냐면...
몰라요. 라고 대답했어요. 이쁘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웠거든요. 지금이라면 마음껏 말해줄 수 있는 말을 그때는 너무 어렸어서 해주지 못했던거 같아요.
지금이라면... 아마 마음껏 해줄지도 모를일인데
 
하얗게 쏟아지는 것들과 그 안의 남율,
 
그것들을 응망하다 보면...
 
쏴아아 눈꽃처러 부숴지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닿습니다.
 
아주 멀리서 바람을 탁 ㅗ다가오다가...
 
타고 다가오다가ㅏ..
 
물이 가라앉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당신을 덮칩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닿는 소리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그대로 파도 속에 묻힌 것처럼 숨이 막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
 
다곰 도. (GM):지나치게 선명해진 풍경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지나치게 선명해진 풍경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뿌옆게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렸던 것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보입니다.
 
커다란 벚꽃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코 끝을 맴돌았던 따뜻한 향기는 벚꽃 향이었나 봅니다.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한번 해볼까요.
 
인도자인 당신의 소원을 누가 들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행운 판정해주세요
 
정선호:(아)
기준치: 40/20/8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역시 얼굴만 똑같은거려나?"
 
작은 웃음과 섞인 음성이 들립니다.
 
남 율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당신의 손바닥에 벚꽃잎을 놔줍니다.
 
팔랑이며 떨어지는 것이 남 율을 닮았습니다.
 
남 율:작은 보답이에요. 그쪽 덕분에 소중한 추억이 생각났으니까요.
 
손바닥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 사이를 스치는...
 
"율이씨 너무 귀여워요. 못잡는거마저 너무 귀여워요"
 
"조.. 조용히해요..! 사람들이 듣잖아요!"
 
"소원이 빌고 싶었던거에요? 진작 말하지"
 
"... 이거 나 주면 당신은 어떡하려구요?"
 
"남의 소원 뺏어 빌어도 효과 없는거 아니에요?"
 
"그래도 빌어봐요. 혹시 모르잖아요. 율이씨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게 내 소원이고 행복이 될테니까요. 나는 필요없어요."
 
단편의 기억이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목소리와 얼굴.
 
이건 누구의 기억인가요.
 
이건 누구의 추억인가요.
 
다소 소란스러운 주변의 사람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
 
바라에 손을 흔드는 이파리.
 
? 바람에
 
단정한 머리카락을 흩어내는 차가운 바람,
 
지금처럼 폭설 같이 내리는 봄의 눈 벚꽃.
 
나란히 걷는 두 쌍의 발,
 
닿을락 말락 가까운 손의 거리
 
겨우 잡은 벚꽃잎을 손 사이에 가두고 간절하게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남 율
 
봄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망자라 이러는 것일까요,
 
이렇게 남의 추억에 물들어도 되는 것일까요.
 
바래진 추억에는 남율과 누군가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라
 
당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기억에 멍청하게 서 있다 보면
 
힘 있게 분 바람에 손바닥에 있던 꽃잎이 날아갑니다.
 
놓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날아가게 두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당신의 손에서 떠나게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민첩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손 끝을 스친 꽃잎은 더 멀리 날아갑니다.
 
목적지도 모르고 팔랑팔랑 날아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저 꽃잎이 뭐라고 이런 생각까지 들게 하는건지.
 
그런 당신을 바라보던 남 율은 오묘한 표정을 지어냅니다.
 
눈가가 어쩐지 붉은 것 같습니다.
 
우는 것일까요.
 
남 율:내 소원은.. 아마도 당신과 같았을텐데...
 
슬픔에 잠겨 웅얼이는 목소리가 내용을 흐립니다.
 
남 율의 말에 집중하려 한 발자국 다가가면
 
뺨에 무언가 닿습니다.
 
꽃잎이라기에는 차갑고 가벼운 느낌이 들었는데..
 
하늘을 바라보면,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꽃잎을 간지럽히던 빗방울들은 하나 둘 굵어져,
 
벚꽃을 감싸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흐르는 물에는 떠오르는 사랑이 가득해서 손에 잡힐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어딘가 어둡고, 차갑고 습한 우울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애처로운 파랑이 흔들리며 당신의 머리, 목덜미, 어깨를 적셔드네요.
 
당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파랑 중 하나가 눈에 스며듭니다.
 
눈에 들어간 것은 깊숙하게 자리를 차지해 감정에 녹아듭니다.
 
파랑은 꼭 당신의 슬픔 같이 뺨을 타고 흐르고,
 
따갑게 눈 앞을 흐리게 만듭니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옆에서 가만히 비를 맞던 남 율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남 율은 당신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이끕니다.
 
남 율:그렇게 계속 비 맞고 있으면 감기 들어요
우리 다른곳으로 갈까요?
 
정선호:(모두 생소하고, 낯설기만 합니다. 한순간 흘러들어온 기억은 모든 것을 흐트려놓아요. 지독하게도 낯선, 혹은 그 반대의....)
...아, (제 손을 잡아 끄는 당신을 봅니다. 살아있지도 않으므로 감기에 걸린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나...당신이 이끄는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남 율: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다니 곤란하네요. (당신의 손을 잡은 축축한 손이 맞잡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잡아왔습니다. 마치 당신을,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아.. 그러고보니 저승사자들은 감기 같은것은 안걸리려나요? 괜히 쓸데 없는 걱정한것 같네요. 그래도 비 맞는건 기분이 나쁘니까요.
 
정선호:..이 얼굴의 주인을 많이 사랑했나봐요. (꽤 충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당신의 친절이 누군지도 모를 이 얼굴의 주인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주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남 율:...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우뚝 멈춰선 그가 고개를 돌리니, 슬픈 웃음이 입가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그의 눈물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해요. 아주 많이. (그 말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 그는 아직도 그 사람을 지독히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흐릿하게 흩어집니다.
 
비를 맞아서 몸이 차가운데,
 
잡힌 손은 데인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집니다.
 
남 율이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합니다.
 
젖은 남 율의 뒷모습,
 
찰박이며 다리에 닿는 빗방울,
 
여기저기 늘어진 웅덩이 속 모습.
 
지나치게 습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 옵니다.
 
그렇게 여름의 한 장면이 됩니다.
 
몸을 건드리느 가벼운 빗방울에 익숙해질 즘,
 
남 율과 잡은 손의 온기가 식어갈 즘..
 
당신의 눈에 천막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갑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단단한 기둥, 둥글게 생긴 지붕
 
크게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
 
커다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버스 정류장입니다.
 
편의점 앞에 있었던 정류장이었나보네요.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들어가 볼까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섭니다.
 
든든한 지붕 덕에 자잘하게 당신을 괴롭히던 빗방울이 닿지 않습니다.
 
어쩐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 율은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빗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옷을 짜냅니다.
 
그리곤 젖은 머리를 한번 바라보더니 손으로 털털 대충 털어냅니다.
 
다곰 도. (GM):주르륵, 남율의 옷과 머리카락에서 물이 가득나옵니다.
 
주르륵, 남율의 옷과 머리카락에서 물이 가득나옵니다.
 
행동을 반복하며 물기를 없애던 남 율은 작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남 율:물에 빠진 생쥐꼴이네요. 원래 저승가는 길은 이래요? 이렇게 젖은 몰골로 저승 가는거에요?
이렇게 비 맞아본건...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예전에도 맞은 적 있었어요. □□씨랑. 어쩌다 보니까 내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늦어지게 되고 그걸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씨가 데리러 왔을때 쯤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한참동안 같이 있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요. □□씨가 뒤에서 꼭 끌어안고 안놔준것만 기억나고... 빗소리랑 그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어쩐지.. 두근거리더라구요.
아마 시간만 아니었으면 계속 같이 있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져서 결국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오기로 결심했거든요. 근데 하필이면 우산이 다 떨어진거에요. 딱 그날에.어이없죠?
어쩔수 없이 택시라도 부를까 하다가 그 사람이 핸드폰을 뺏어서는 비 맞고 가자고 낭만적이지 않냐고 결국은 비 맞으면서 집에 같이 갔어요. 그 떄문에 개도 안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리고 그 사람은 제가 나을때까지 시무룩해져가지고 여름인데도 두꺼운 이불을 세겹이나 덮어준거에요. 우습죠?
 
정선호:(그 사람이라 함은 아까와 같은 사람이겠죠. 죽은 이후에까지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두번째로 맞이하는 상대의 무의식과 상대의 이야기 또한 그 사람에서 멈춰서 좀처럼 헤어나올 생각을 안합니다.) 그 사람은 용케도 감기에 안 걸렸군요.
 
남 율:감기에 걸리기는 했는데 얼마 안가서 금방 낫더라구요. 그러더니 무슨 자기가 철인도 아니고 하루종일 제 옆에 붙어가지고는 떨어지지를 않는거에요. 감기 옮는다고 떨어지라고 해도 말도 죽어라 안듣고. (하,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비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는 다시금 이 파란 빗속에서 그 사람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꼭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그 얼굴은... (다시 보고 싶어. 그 말은 입에 담지 않은 채 그는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이야기하던 남 율의 눈에 빗물이 흘러내립니다.
 
아직 물기가 다 안 닦였나보네요.
 
금방이라도 턱을 타고 떨어질 것 같은데 닦아줄까요.
 
정선호:(빗물이 그대로 흘러내리면, 꼭 우는 것처럼 보이겠죠. 왜인지 그것은 보고 싶지 않아 무의식중에 손을 내밀어 눈가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느리게 닦아냅니다.)
 
손을 뻗어 남율의 눈가로 가져갑니다.
 
손을 데일듯이 뜨거웠던 온도가 다시 닿습니다.
 
분명 낯선사람임에도,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당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눈을 마주하며 웃던 남 율의 입꼬리가 파르르 흔들립니다.
 
남 율:그때.. 버스 기사니한테 엄청 혼났는데, 그렇게 다 젖어서 버스를 탈거냐면서..말이에요."
 
남 율과 시선을 마주하면,
 
가슴 어딘가 데인 느낌이 듭니다.
 
뜨겁고 따끔한 것이..
 
저절로 손에 힘을 주게 만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타닥타닥, 따끔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아득해집니다.
 
수많은 모래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흐릿한 기억이 밀려옵니다.
 
"아직도 비오네요."
 
" 큰일났네요.... 집에 가야하는데.. 편의점에 가서 우산이라도 사올까요? 아마 있을거에요"
 
" 그렇게 해요"
 
"... 우산이 다 떨어졌대요.. 이걸 어쩌지.. 당신 지갑 두고 왔어요? 콜택시라도 불러야.."
 
" 이왕 이렇게 된거 같이 비맞으면서 걸어갈래요? 낭만있고 멋지잖아요."
 
"□□씨 미쳤어요?? 요즘 비는 맞으면 큰일나요..!"
 
"그래도 율이씨랑 같이 비맞으면서 가고 싶은데.. 안돼요? 진짜 안돼요?"
 
"이 사람이 진짜..!"
 
또다시, 남 율과 아릿한 추억의 필름이 재생됩니다.
 
왜 자꾸 당신이 그의 추억에 물드는 것일까요.
 
그날의 빗소리와, 그날의 온도, 그날의 가쁘던 숨이 왜 이렇게 생생할까요.
 
함부로 스며드는 추억에서 남 율은 왜 당신에게 □□씨라고... 부르는걸까요.
 
단순히 지금 당신이 그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런걸까요
 
애초에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었죠,
 
당신의 얼굴은.. 무엇이었죠.
 
정류장 안의 남 율이, 눈가에 닿은 온기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꼭 당신의 기억처럼,
 
섞여 들기 시작합니다.
 
상념에 빠져 멍청하게 굳어 있으면 남 율은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당겨 당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집니다.
 
남 율:나 말고 그쪽 젖은 거나 신경써봐요. 머리 다 젖어가지고.
 
왜 이렇게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남 율이 말하는 □□씨가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당신은 그저 인도자일 뿐인데.
 
심연으로 갈 동안의 말동무일 뿐인데.
 
그래요,
 
말동무입니다 당신은.
 
이런 추억에 젖어 들면 안됩니다.
 
화제를 바꿔볼까요.
 
이런 비오는 날 말고,
 
해가 비치던 그때의 추억은 없냐고.
 
정선호:....(마지막이랍시고 정말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에 스며든 물기를 금방 짜내며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립니다.) ..그 사람과 있었던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다른 이야기는 또 없습니까?
 
남 율:있죠. 아주 많이. (아직 덜 가신 물기를 손으로 살살 털어줍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들어볼래요..? 별 거 아니었어요. 그날은 비가 온 다음 날이라서 날씨가 덥지 않고 싸늘했었고 햇빛이 따뜻하고 맑았어서 놀러가기 딱 적당한 날이었어요. 그래서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자고 그러길래 그사람이랑 같이 영화를 보러갔어요.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때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그사람의 따뜻한 손밖에 생각이나지 않았거든. (그는 엷게 웃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밥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그러니까 어쩌다보니까 늦은 밤이 되었어요. 집에 갈려는데..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인지 얇은 이슬비가 내리는거에요.
또 감기가 들면 어쩌지 전전 긍긍하는 그 사람이 웃겨서 이번에는 정말로 편의점에서 엄청 큰 우산을 샀어요. 두 사람이서 한번에 쓰고 갈수 있게
늦은 시간이었어서 주변거리는 고요했고 걸어가는 내내 그사람의 손을 잡으면서 우산위로 엷게 떨어지는 이슬비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어요.
(아직도 생각이 나는지 그는 조금 밝아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고 두 사람이 있는 그 자리에서 무슨 용기가 그렇게까지 솟아올랐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주변에 딱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마 이렇게. (손을 뻗어 당신의 목덜미에 팔을 둘러 까치발을 슬쩍 들어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것 같은 자세를 취해보였습니다.)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것처럼 그 사람에게 입을 맞췄어요.
 
남 율:(그러고는 당신에게 얼굴을 가까이 해보였다가 목덜미에 둘렀던 팔을 풀고 뒤로 살짝 물러나 웃었습니다.) 그 날 붉어진 그 사람의 얼굴이란, 그 이후에는 뱃속에 능구렁이라도 들어 앉았는지 그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짓지 않더라구요. 당당하게 내 입술만 훔쳐갔지. (픽 하고 웃으며)
다정하긴 했지만 조금 뻔뻔했던 사람이었네요... 그렇죠?
 
정선호:(화제를 돌려보려고 했던 질문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요. 목에 팔이 둘러졌던 순간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뻔했더랍니다. 기껏 진정하려고 했던 걸 이 사람은 어째서 또 흔든단 말인가요.) ...당신도 꽤 뻔뻔하군요. 그걸 저에게 손수 보여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남 율:.... 어쩐지 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는 그래도 될것 같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짧게 웃으며) 그러게, 점점 그 사람을 닮아가나봐. 그래도 진짜로 입은 안 맞췄잖아요?
(그러다가 두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왜그래요? 입맞춤 같은 직접적인 행위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구네요. 저승사자들은 다 그래요?
 
정선호:(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니...저승사자들은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들인걸요. 어쩐지 억울해집니다.) 우린 생전의 기억이 아예 없습니다. 입맞춤은 해 볼 시간도 없이 영혼만 인도해 왔는데, 이 행위를 익숙하게 받아들일리가요. (애초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 적도 없었지만...)
 
남 율:생전의 기억이 아예 없어요? (그 말에 놀란듯 눈을 둥글게 뜨며 되묻습니다. 조금은, 슬프게 들려오는 그 말에 그는 멍하니 중얼거리듯이 말했습니다.) 그건.. 조금 슬프네요. 즐거웠던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모두 잊고 그 다음만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거잖아요. 그런걸 보면.. 당신이랑 나는 닮았나봐요.
 
당신이 무슨의미냐고 묻기도전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점점 잦아듭니다.
 
바닥에 닿는 빗방울의 수가 줄어듭니다.
 
아무 말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 율은 아주 옆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남 율:비가 그쳤으니까 이제 갈까요?
사실은 저 빨리 거기에 가고 싶었거든요.
저승 말이에요... 어쩐지, 그곳에서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아서. 떨림이 멈추지 않아요.
□□씨가 분명 마중 나온다고 했었어요. 그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니까요. 있을것 같네요.
 
가야죠,
 
마음속에서는 그를 돌려보내고 싶은 속삭임이 들리지만..
 
당신은 그를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앞으로 걷습니다.
 
어디가 앞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걷다 보면 심연이 나오겠죠.
 
늘 그랬으니까...
 
어떻게, 왜,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랬으니까요.
 
저벅저벅, 당신의 발소리에 또 하나의 발솔리가 얹어집니다.
 
발소리가 얹어집니다.
 
나란히 움직이던 남 율은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해 당신을 돌아봅니다.
 
남 율: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내 이야기만 한것 같아요.
그쪽은 어떻게 살아왔어요? 이 참에 한번 털어놔봐요. 마지막 가는길에 들어줄 정도는 되니까
 
정선호:(어떻게 살아왔느냐니. 눈을 깜박이다가 당신을 봅니다.) ..당신처럼 길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곳에서의 기억은 영혼들을 인도했던 것 외엔 없으니까요.
(털어놓을만한 것. 아마 평소때였다면 이것으로 끝났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인도하고 나면 이 일도 끝입니다.
 
남 율:(그 말에 두 눈을 깜빡였습니다. 이 일의 끝이라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아직 몰랐기 떄문에 그는 의문이 섞인 얼굴로 당신을 빤히 비라보았습니다.) 끝이라고 한다면.. 당신 퇴사하는거에요? 음... 아니면 환생이라도 하는거에요?
 
정선호:..퇴사...대충 그런걸까요. 애초에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 기억도 없지만요.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입니다. 자신은 심연에 들어가본 적이 없으니, 그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니까요.) ...끝나고 나면, 글쎄요. 당신 말처럼 될지도 모르죠. 이제껏 보냈던 영혼들과 같은 곳으로 가게 될지도.
 
남 율:(그 말에 그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지독하리만치 눈부신 미소.) 왜인지 모르지만 나 당신의 진짜 얼굴이 궁금해졌어요.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으로 오는게 아닌, 당신 본연의 모습이요. 환생하고 나면 볼수 있으려나? 아, 그렇지만 역시 그때는 기억이 없으니까 서로 모르는 척 지나쳐버려서 알아보기 힘들지도...(그는 뭔가를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표시라도 할까요 우리? (결국 그가 사랑했던 그 사람처럼 엉뚱한 말을 내뱉어버립니다.)
 
정선호:...(무엇이 그리도 즐거웠는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대하는 모습은 정말..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니면 자신의 얼굴때문인걸까요.) 저승사자한테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대하는 건 또 당신이 처음이네요. 마지막이라서 이런 일도 일어나는건지...무슨 표시요?
 
남 율:글쎄요.. 어떤 표시가 좋을까요.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듯 하다가 아- 하는 얼굴로 짓궂은 미소를 띄웠습니다. ) 알아보면 목뒤에 입맞춰주기 어때요? 원래 그 사람 아니면 허락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당신 재미있으니까 한번쯤은 초면에 뒷목에 키스해도 허락해줄게요.
 
정선호:(생각지도 못한 표시에 입이 조금 벌어지고야 맙니다...) ....그 사람이 알게 되면 제가 맞아서 다시 저승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아닙니까? 무슨 표시를 그렇게...그리고 정해도, 결국엔 다 기억을 잃게 될텐데요.
 
남 율:뭐 어때요. 이건 그 사람이 당신을 대신 보낸 벌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렇게 말하려구요. (그는 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자기가 안 오고 다른 사람이나 보내고 말이야. 순 엉터리야. 어쨌든 그렇게 정한거에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는 어쩐지 굉장히 막무가내인듯 보였습니다. 조금.. 급해졌던 탓일까요.)
 
차츰 구름이 걷히고, 노을이 뺴꼼 고개를 내밉니다.
 
황홀한 색을 하늘 가득 채운 해는 땅속으로 점점 잠겨듭니다.
 
찬란히 빛나는 것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드네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 있는 남 율을 바라보면, 쨍한 빛이 아프게 파고듭니다.
 
머릿속까지 들어왔는지 그 안을 헤집으며 움직입니다.
 
숨이 코 끝에 닿지 못하고 뱉어집니다.
 
당신의 모습에 놀랐는지 남 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남 율:왜그래요? 아까 비 많이 맞아서 그래요? 괜찮아요?
 
이리저리 발을 움직여댄 남 율은 당신에게 다가와 등을 느릿하게 쓸어줍니다.
 
잔잔한 도닥임 덕분에 조금 안정되는 기분입니다.
 
짙은 블랙베리 향이 흘러들어옵니다.
 
영혼에 향이 있던가요.
 
묘하게 안정되는 향헤 숨을 몇 번 고르고 나면 머리의 통증이 사라집니다.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듭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행동이 잠시 멈춥니다.
 
자각을 못한 건지,
 
이런 상황이 익숙한 건지,
 
남 율은 별 반응 없이 당신의 얼굴을 살핍니다.
 
크고 동그란 검은 눈에 담기는 당신의 얼굴이 어쩐지.. 낯익습니다.
 
천천히 남율이 몸을 뒤로 빼며 거리를 넓히면
 
반짝반짝 빛나는 노을이 남 율의 뒤로 생깁니다.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남 율의 머리카락이 휘날립니다.
 
남 율의 눈이 느릿하게 감뜨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합니다.
 
이 장면, 어딘가 익숙합니다.
 
" 괜찮아요? 아니 그러니까 왜 뒤를 보면서 걸어요?"
 
"율이씨 얼굴이 너무 보고 싶은걸 어떡해요? 그래서 뒤로 걸은건데 이잉"
 
".... 아프게 넘어졌어요? 어디봐봐요. 바닥이 모래라서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텐데.. 눈에 들어갔어요?"
 
눈에 바람좀 불어달라는 농조 가득한 말과 함께 남 율과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훤히 웃는 거 다 보인다며, 이 사람이 진짜 !! 하는 남율의 목소리에 당신의 마음을 간질거립니다.
 
자잘한 웃음소리가 묵직한 심장소리와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냅니다.
 
저녁노을을 닮은 소리입니다.
 
가벼운 바람이 당신의 얼굴을 스치고, 남 율과의 거리가 멀어집니다.
 
강에 비치는 윤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남 율의 뺨에 드리웁니다.
 
온통 눈이 부신 장면입니다.
 
빛나는 것들 중 가장 천연한것은 남율이겠죠.
 
옅은 웃음에 휘어지는 눈꼬리,
 
올라가는 입매,
 
서늘한 바람에 흩어지는 머리칼.
 
그리고 잔잔하게 울리는 남 율의 단정한 음성.
 
"이제 괜찮아 보이는데, 선호씨."
 
쿵, 쿵, 쿵..
 
빠른 심장 소리가 적막을 채워냅니다.
 
이건 누구의 심장 소리일까요.
 
분명, 이곳에 살아있는 자는 없는데.
 
남 율:이제 괜찮아 보이네요. 그쪽.
 
말이 겹쳐집니다.
 
익숙한 음절이 반복됩니다.
 
하나의 단어만 빼고 똑같은 문장입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는 선호씨, 지금은 그쪽
 
선호씨, 이는 누구의 이름일까요.
 
남 율에게 그쪽이라는 말을 한두 번 들은것도 아닌데 왜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일까요.
 
기억의 파도가 또다시 밀려옵니다.
 
잔잔하게 밀려오던 파도는 업습니다.
 
당신을 덮칠듯이 몸을 키워 오는 파랑에 잠겨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깊은 곳에 갇혀 호흡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숨을 터뜨려냅니다.
 
누구의 기억인가요.
 
남 율만의 기억이 맞나요.
 
당신의 마지막 망자의 기억을 함부로 훔쳐본 것이 맞나요.
 
왜 남 율이 당신을 향해.. 선호씨라고 부르는 거죠.
 
당신은 어떻게 인도자가 된 것일까요.
 
당신의 죄는 어떤것이었을까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신은... 누구죠?
 
지능을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하나의 사실이 뒤늦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남 율은 가을과 관련한 추억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떠올린 이 추억은,
 
당신이 간직한 이 추억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이름은...
 
상념에 빠져있다 보면,
 
시야가 하얗게 물듭니다.
 
가을의 주황빛으로 가득하던 색채들은 바람에 휘날려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바닥에 깔린 안개가 넘실거ㅣ며 위로 쏟아 오르는 것이
 
넘실거리며 위로 쏟아 오르는 것이
 
금방이라도 당신을 잡아먹을 것 같네요.
 
이제 심연에 거의 다 왔나 봅니다.
 
이 안개는 심연 주변에서 종종 보이던 것이었으니까요.
 
다른 안개와 달리 심연에서 보이는 물안개는 유난히 짙어서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인도자가 존재하죠.
 
영혼들을 안전하고 평온한 마지막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잠시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지만,
 
당신이 할 일을 해야죠.
 
그게 당신의 운명이니까요.
 
운명을 따라야 합니다.
 
운명을 거스르는 것은
 
죄슬 저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 죄를
 
마음을 다 잡고 남 율을 인도하려 찾아보면,
 
당신의 옆에 있어야 할 남 율이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등을 도닥였는데...
 
어디로 간 거죠?
 
주변을 둘러보지만 남 율의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시야에서 사라진 남율을 찾으려 돌아다닙니다.
 
당신이 놓친겁니다.
 
다른 생각을 해서 남 율을 놓쳐버리고만 겁니다.
 
책임감이 마음을 짓눌러냅니다.
 
인도자가 사사로운 생각을 해서.. 일을 그르치다뇨.
 
ㅜㅇ쿵..
 
쿵쿵..
 
그런데 아까 전부터 왜이렇게 심장이 울려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너무 고요해서,
 
불안함에 떠려오는 당신의 심장소리가 너무 잘 들립니다.
 
부정할 수 없어요.
 
왜 불안해하는 걸까요,
 
왜 서운해 한 걸까요,
 
왜 애틋한 걸까요.
 
왜...
 
이렇게 절박하게 남 율을 찾는 걸까요.
 
갑자기 떠밀려온 의문들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그때..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늘에서 눈이 내립니다.
 
아까 보았던, 봄의 눈과 다른 하얀 눈이 천천히 떨어집니다.
 
손을 뻗으면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이 닿아 스며듭니다.
 
손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내리면
 
당신이 찾던 남 율이 보입니다.
 
떨어지는 눈밭이 거세져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지만,
 
남 율이 창백하진 낯으로 어딘가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장면... 또 익숙합니다.
 
하얀눈, 신호등,
 
횡단보도?
 
남율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눈을 돌리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부드럽게 굽이쳐 흐르는 물안개뿐이에요.
 
남 율에게 한 발자국 다가갑니다.
 
안개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점점 시야에 들어섭니다.
 
봄에 보았던 커다란 벚꽃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보이네요.
 
크고 푸르던 이파리는 사라지고 하얀 눈을 팔에 덮고 있습니다.
 
여름에 잠시 비를 피했던 정류장이 보입니다.
 
지붕에 수북이 쌓인 눈이 눈에 띕니다.
 
가을에 거닐었던 거리
 
보도블록에 눈이 짓눌린 것이 보입니다.
 
발을 헛디뎠다가는 넘어질 것 같네요.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도블록 끝에는 암 율이 서 있습니다.
 
남 율의 시선은 빨간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향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여기는... 버스 정류장이 있던 자리.. 그 편의점이었습니다.
 
어쩐지 익숙합니다.
 
이제 몇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남 율의 손을 잡아 이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발걸음을 떼면,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옵니다.
 
그와 동시에 남 율도 걸음을 옮깁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느릿하게 재생됩니다.
 
'어디쯤이에요 기다리다가 목빠지겠어요'
 
' 이제 금방 가요... 뭐.. 좀 사느라 늦었어요. '
 
'율이씨 올라오는 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올라와요'
 
' 애도 아니고... 금방가요'
 
입을 벌리면 하얗게 김이 서리던 겨울
 
학교 정문에서 남 율에게 문자를 보내던 당신
 
그리고 그 날 펑펑 내리던 눈.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붉은 꽃을 한 아름 안고 있던 남 율
 
먼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고 있었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남 율이 당신에게 다가오던 그때..
 
빠앙-!
 
속까지 크게 울리던 트럭의 클락션 소리
 
순간 모아졌던 기억들이 다시 흩어집니다.
 
지금도 또 똑같이,
 
클락션 소리가 귀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멍청하게 서 있던 당신은 눈을 크게 깜빡입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었는지 갑자기 들어차는 차가운 숨에 온몸이 떨려 놀랍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큰 트럭이 남 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남 율은 횡단보도 가운데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입니다.
 
그 때처럼요.
 
민첩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리 두면 안된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발이 얼어붙은 것일까요.
 
앞으로 나가는 것이 무섭기도,
 
두렵기도 합니다.
 
감정에 압도되어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던 다리가 겨우 움직입니다.
 
뒤늦게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남 율은 자신에게 손을 뻗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바라본 남율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크고 잔인한 소리가 당신을 덮칠 것을 생각해 눈을 질끈 감으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무섭게 달려오던 트럭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저 횡단보도 가운데에 주저앉은 남 율만이 보일 뿐입니다.
 
남 율:.. 그래, 난 원래... 이렇게 죽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내려앉은 적막에 가만히 있다 보면,
 
하나,
 
둘,
 
셋...
 
막혀있던 댐이 터지듯 흐릿한 기억이 당신에게 쏟아져 내립니다.
 
이름 정선호, 나이 27살
 
평범하게 잘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는 누나가 한 명 있었고
 
원체 다정하지 못한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친구들이 있었으며
 
번듯하게 좋은 직장과 좋은 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 율은.. 편의점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던 자신의 연인입니다.
 
서로 같이 매일 얼굴을 보고,
 
투닥거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잡고
 
아주 가끔은 노을이 지는 저녁 아래에서 숨결을 나누기도 했죠.
 
사랑했나, 사랑했던 사이였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남 율:다 나때문이야. 내가 멍청하게 발을 움직이지 못해서.. 선호씨가 죽은거야.
 
당신이, 아니, 아마 당신의 전생이라고 추측되는 이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남 율을 구한 것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운명을 거스르는 죄를 자처한 이유는 그것 밖에 없을 테니까요.
 
남 율:내가 죽었어야 했어.. .. 내가 이렇게 쉽게 죽으면 안되는 거였어...
(그가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는 눈은 금방이라도 꺼져가는 생명처럼 작게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원래.. 이 자리에서 죽었어야 할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였어요.
그 사람이 나를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죽지 말았어야 했어. 그 사람만은.. 선호씨만은 반듯하게 살아 있기를 바럤어요. 그사람이 더 없이 행복하기를 바랬어요.
난...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던게 아니야.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나 말이에요. 우스운 사람이죠.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더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더니 이제와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고... 분명 그 사람은 날 원망할텐데.. 그럴텐데...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주저 앉아버립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정선호의 앞에서 왈칵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었던 그날처럼)
 
남 율:그런데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난... 나는..
그 사람과 내가 있는 그 집에서
모든게 다 있는데
단 하나 그 사람만 없다는 사실을... 견딜수가 없었어.... 이미.. 너무 사랑해버렸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우는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미소짓습니다.) 나... 바보같나요?
 
정선호:(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한없이 멀고도 가깝게 느껴집니다. 멀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은 이미 그 생을 끝마치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며..그럼에도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제 앞에서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선뜻 내심 원하고 있던 말을 당신에게 내뱉진 못합니다. 다만 우는 당신에게 다가가 그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울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남 율: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러지 않을거야. 늘 나보고 행복하라고 했던 그사람이 자신을 따라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좋아할리가 없어. (비명을 지르듯 날카롭게 외치며)
그래도 열심히 꾸역꾸역 살아갔어요. 그 사람이 바라지 않으니까. 그 사람은 자신을 잊고 살아가길 바랬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그리워 하면서도 살아갔어요. 그런데... 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어떡해야하만 하죠...
 
좀먹은 우울이 몸과 마음을 뒤덮어냅니다.
 
정선호, 그의 부재로 무너진 남 율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그려집니다.
 
검고 푸른 집 안에서 그는 꾸역꾸역 생을 이어나갔을 것입니다.
 
당신, 아니 당신의 전생을 위해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겠죠.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겠죠.
 
그렇게 되면 당신의 죽음을,
 
당신의 생을,
 
당신과의 추억을 끌어 안을 이가 없을테니까.
 
남겨진 사람은 그랴야하니까.
 
그래야하니까.
 
꿈에 나온 당신을 보면서 숨을 연맹했을 겁니다.
 
죽지 못해서 살았네요 남 율
 
참으로 가엽고, 애달픈 감정입니다.
 
참으로 위험하고, 전염성 있는 감정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람은 죽는데,
 
왜 사랑은 안죽을까요.
 
사랑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사랑은 왜 만져지지 않는 걸까요.
 
눈에 보이고, ㅏㄴ져졌더라면...
 
만져졌더라면...
 
사랑을 떼어낼 수 있을 텐데.
 
사랑에 집어 삼켜지지 않을 수 있을텐데.
 
과연 신이 내린 벌 답습니다.
 
그저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신에게 반항을 할 수 는 없으니까요,
 
그랬다간 더 큰 운명에 휩쓸리게 될 겁니다.
 
남 율의 손을 잡습니다.
 
바닥을 향했던 고개가 들리고 시선이 일직선으로 맞춰집니다.
 
눈에 일렁이는 파도에 잠겨 익사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눈을 마주하면..
 
깜빡, 깜빡 눈꺼풀이 가볍게 움직여 눈의 바다를 가립니다.
 
그리고 또 다시 남 율의 고개가 숙여집니다.
 
남 율:미안해요.. 계속... 이렇게 지체하게 만들어서요.. 이제..가요.
 
잡힌 손에 이끌려 저항 없이 그저 따라가게 됩니다.
 
천천히 마주 걷는 발소리가 옅어집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정선호: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옆에 있는 남 율의 영혼이 희미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점점 심연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점점 영원한 죽음에 가까워지고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인도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습하고 눅진한 향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심연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둥근 선을 그리는 큰 연못 주변에 있는 물안개가 서서히 걷힙니다.
 
낮도 아닌 밤도 아닌 하늘이 연못에 비칩니다.
 
언제 보아도 찬연하고 황홀한 장면입니다.
 
풍경에 압도되어 홀린다는 건 다 여기에서 나온 말일겁니다.
 
아무 말 없이 이곳을 둘러보던 남 율의 얼굴에 실망감이 피어오릅니다.
 
이 광경에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탄할 줄 알았는데
 
왜 때문일까요?
 
혹시 바라는 모습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남 율:내가 생각한 저승이랑은 모습이 많이 다르네요. 커다란 문도 없고.. 저승의 신 같은것도 없고...
그리고.. 봐봐요. 역시.. 선호씨.. 마중 안나왔네요. 내가 싫나봐요.
 
남 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심연으로 다가섭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네요.
 
당신도, 남 율도 영혼의 마지막 종점까지 왔습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리 걸으면 심연 소긍로 빠져들겁니다.
 
속으로
 
거울처럼 깨끗한 심연에 남 율의 얼굴이 비칩니다.
 
하나의 미련도 없는 것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미련 하나 정도는 남은 것 같습니다.
 
입안의 여린살을 씹어내던 남 율이 당신을 돌아봅니다.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당신과 시선을 마주합니다.
 
짙은 검은 눈동자에 수 많은 감정이 섞여 들어 읽어낼 수 가 없습니다.
 
아마 한 단어로 표현 될 겁니다.
 
사랑이라는 그 낭만적인 단어는 모든 것을 포함하니까요.
 
걱정, 초조, 설렘, 행복, 우울,
 
사람의 생까지
 
모든 공기가 날아가버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한 곳에 스며든 것 같은 착각에 들 때 쯤, 단정한 음성이 떨어집니다.
 
남 율:선호씨
선호씨라고... 한번... 불러도 될까요?
 
누군가는 남의 이름을 부르며 울어버릴 것 같다고 하는데,
 
남 율에게 이 이름이 불리니 울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아,
 
남 율에게 선호씨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익숙합니다.
 
하긴.. 원래 당신의 이름이었으니까요. 이상할 것도 없죠.
 
남 율:한 번만, 선호씨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선호씨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데 마중을 안나와서 그 어떠한 말도 해줄수가 없어요.
 
정선호:(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선호였던 자신의 삶을 당신에게 말해도 좋을지. 그래서인지 당신이 부탁하는 것에 다른 말을 얹지는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남 율:(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을 꼭 끌어안습니다. 이 온기가 언젠가 정선호라는 사람에게 전달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것도 같았습니다.) 당신이 바라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보다 당신을 너무 사랑했어서.. 이렇게 놓을 수 없는걸 용서해줘요.
분명... 내가 많이 미웠고 싫어서 마중 나오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다 이해해요. 하지만 당신이 없는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건 내게 생지옥이나 다름없어서 힘들었던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랐어요. 이 자리에 와서 꾸짖어주기를 화내주기를 바랐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뒤로 떨어졌습니다. 웃는 얼굴이 애달픕니다. 희미해져가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많았기에) 사랑해요. 선호씨.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거에요. 그러니까..... 안녕....
 
한참을 말하던 남 율은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눈물을 북북 닦아내고 환한 웃음을 띄웁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심연 속으로 걸음을 옮겨냅니다.
 
그의 뒷모습이,
 
가루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눈에 담깁니다.
 
죽음이 발에서 천천히 타고 올라와 종아리에 물듭니다.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보면
 
남 율이 몸을 돌려 당신을 바라봅니다.
 
남 율:고마워요. 여기까지 무사히 인도해줘서요.
나랑 한 약속 잊은거 아니죠? (짓궂은 미소를 띄우며)
잘가요.
그리고
나중에 또봐요
 
당신은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남 율을 봅니다.
 
당신의 마지막 망자,
 
당신의 죄를 바라봅니다.
 
저 사람은 이제 가루가 되어 이 세계에 흩어지겠죠.
 
그럼 당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당신은 무엇을 해야할까요.
 
무슨 생각이 드나요.
 
심연을 바라봅니다.
 
거울처럼 두명의 인영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남 율 뿐 아니라 당신의 모습도 심연에 떠오릅니다.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이 시리게 마음을 파고 들어 당신을 꺠웁니다.
 
당신의 죄가,
 
모두 끝났습니다.
 
신이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는 없어요.
 
저 멀리 심연의 중앙부로 스며드는 남 율이 보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남 율과 함꼐 들어갈까요?
 
한치 앞을 모르는 저 어둠을 향해 들어갈 수 있나요?
 
남 율과는 어차피 과거의 인연입니다.
 
그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이곳에 남고 싶다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당신의 손목에 그려진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모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당신.
 
정선호:(이미 끝난 연입니다. 나와 당신은. 하지만 우린 이야기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었죠. 지금에서조차도. 그때문에 마지막에 와서도 울기만 하는 당신인데, 이것을 정말 끝난 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마지막까지 풀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이것은 그저 나의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끊어진 끈을 잡고 있는 욕심의 핑계요.)
(흩어지고 있는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손에 옅게 닿아오는 당신을 한가득 품에 끌어안아요. 이제 이곳은 날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에라도, 이 한 순간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 뒷목에 키스를 한다고요?
 
남 율:(심연속에 천천히 가라앉아가는 당신
(심연속에 천천히 가라앚아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는 미련같은것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을 끌어당겨 품에 안아오는 당신으로 인해 퍼뜩 놀라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어딘지 모르게 그 억양과 톤은 자신이 모르는,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였습니다. 고개를 들어올려 당신을 바라보니, 당신이 보여 놀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 선호...씨?
 
정선호:(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그제서야 눈꼬리가 접힙니다. 아, 뛰어들기를 잘했어요. 이대로 그냥 보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겁니다. 아직 익숙치 않아 그때처럼 살가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에요.) 어떻게 그런 표시를 할 생각을 하나요? 나 말고 정말 다른 이였으면 어쩌려고? 나였기에 망정이지.
(놀라 눈을 깜박이는 당신을 한 번 보고는 그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다시 입을 엽니다.) ...마중 인사 나왔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싫어할거라는 말 취소해요. 날 그런 속 좁은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니....(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당신의 눈을 마주봐요. 검은 눈에 맺히는 자신의 얼굴. 제 눈에도 당신이 맺히겠죠.) 같이 가요. 우린 아직 못다한게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남 율:(그 말에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다가 조금 수줍게 미소지었습니다. 물기가 가득 어린 두 눈은 당신의 평상시와 비슷한 그 얼굴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만큼 당신을 잊어버리기 전에 황급히 눈에 담으려는듯이.) 응. 나 사실.. 당신일걸 알고 있었어요. (슬프게 웃는 얼굴은 기뻐보이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심장이 찢어질것처럼 아파보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자님이 진짜로 선호씨를 데려와줬나봐요. ( 당신의 가슴 언저리 어딘가에 자리잡았던 그 마음을, 기억을 온전하게 되찾아줬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신은 약속을 지켜서 직접 마중나와줬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요.)
정말, 옛날부터 지금까지 저 오래 기다리게 하고 애태우게 하는거에 선수에요 선수. 저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밥이 잘 넘어갔어요? (그는 붉게 물들어진 얼굴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얼굴은 분명 엉망일 것이에요. 최근에 잠도 자지 않고 잘먹지도 않았었으니까요. ) 미안해요.... 그냥 선호씨에게 모든게 다 미안해요. (이런 나를 사랑해줬었고 사랑해주며 앞으로도 사랑해줄거라는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서, 그는 못다한 말을을 쏟아내었다.) 이상도.. 하죠..? 당신을 보면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아요.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쓸어내리며 검은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립니다.) ... 나요.... 있죠.... 보고, 보고 싶었어요.... (붉어진 눈시울을 뚫고 눈물이 다시금 방울져 떨어져 심연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정선호:(사랑하는 이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라던가요. 기억이 온전치 않았음에도 무너져내린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 어딘가가 저며지는 것 같았으니 지금의 제 심정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만 그럼에도 당신이기에 사랑스럽다는 생각 또한 듭니다. 손을 들어올려 다시 눈물을 닦아줘요. 아까와 같이, 그러나 명백히 다른 마음으로.) 나도 보고 싶었어요.
(당신과 함께 바스라져 흩어진다는 것만큼 최고의 엔딩이 또 있을까요. 못다한 우리의 이야기를 끝내게 된 것은 잔인한 일이지만, 곧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흩어져 내리다보면, 함께 온 세상에 녹아내리다보면 말이에요. 붉어진 눈가에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춥니다. 마지막 인사는 이것으로 하도록 해요.) ...다음에 또 만나면 뒷목이라고 했죠. 그때 가서 놀라서 밀어내면 안 돼요. 당신이 먼저 약속한거니까.
 
남 율:(그 말에 울다말고 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눈가 위로 내려앉은 입술이 너무도 따스하고 달콤해서 아마도 이별은 잠시겠지요. 눈을 뜨고 또다시 언젠가 당신을 만나며 서로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틋한 감정, 밀려오는 당신을 향한 짙은 애정은 또다시 미래의 당신에게 감겨들어갈것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가라앉아가고 점차 사라지는 당신의 모습을 그는 고개를 들어 당신의 턱끝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가다 대고 떼었습니다.) 분명 선호씨랑은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때는 뒷목에다가 키스해도 뭐라고 안할게요. (사실 기억이 없는 자신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 사실은 쏙 감춰버린 그는 그대로 당신의 품에 머리를 기대었습니다. 점차 사라져가는 몸에, 당신의 손에 가만히 깍지를 끼면서) 조금.. 피곤한가봐요. 나중에 우리 꼭... 만나요. 선호씨 나 두고 다른 사람이랑 바람피지 말아요. (애써 장난을 쳐보면서 당신의 품안에서 힘없이 웃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마,
 
신이 잘못 만든 감정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모든 시공간을 넘어 이어질리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신과 남 율은 인간이었습니다.
 
사랑ㅇ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다행입니다. 다른 것도 아닌 인간이라서,
 
다행히도 인간이라서 사랑을 할 수 있네요.
 
우리는 손을 맞잡기로 했습니다.
 
저 끝없는 어둠에서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두 손을 얽어내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차오른 죽음은, 남 율과 당신의 심장까지 스며들어갑니다.
 
턱끝까지 차오른 어둠에도 눈을 마주합니다.
 
그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꼭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우주에 삼켜진 것처럼,
 
이세계에 흩어질 준비를 합니다.
 
그때 귓가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달콤한 목소리
 
조금 지친듯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뚜렷하게 당신에게 들려왔습니다.
 
" 사랑해요. 선호씨"
 
목소리를 끝으로 들이마실 숨이 부족해지고,
 
멍한 소리가 귀에 차오릅니다.
 
그리고 암전,
 
하나,
 
둘,
 
셋-
 
엔딩 1, 너와 함께 흩어져 날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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